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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단순했다. 여러 AI CLI를 한 화면에서 보고, 필요한 쪽에 명령을 보내는 정도였다. 그런데 일을 벌려 놓고 보니 리모컨과 CLI들이 조금씩 더 많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간단한 명령 전달을 넘어서, AI CLI끼리 티키타카까지 가능해졌다. 바로 그 지점부터 통신체계가 눈에 띄게 복잡해졌고, 사람이 제어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했다.
여기서 문제가 더 재밌고 더 무서워졌다. 통합 리모컨으로 TV를 켰는데 에어컨이 켜지고, 냉장고에게 “식혀줘”라고 했더니 전자레인지가 데우는 모드로 들어가는 식이다. 더 골치 아픈 건 이게 항상 틀리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날은 맞고, 어떤 날은 엉뚱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더 헷갈린다. 리모콘이 지능을 달았나? 장치들이 서로의 신호를 잘못 듣고 있나? 아니면 주소 체계 자체가 꼬인 건가?
이쯤 되면 이건 그냥 만능 리모컨이 아니라 슈뢰딩거의 리모콘에 가깝다.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는 어떤 장치가 반응할지 확정되지 않고, 버튼을 누른 뒤에도 확률적으로만 맞는 것 같은 이상한 시스템. 개발자 입장에서는 “가끔 되니까 더 위험한” 종류의 버그다.
결국 전체 문제를 해결하려면 버튼을 더 영리하게 누르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떤 메시지를 받고, 어디까지 전달하고, 누가 책임지고 복구해야 하는지 설계를 다시 해야 했다.
여기서부터는 단순 채팅 앱이 아니라 작은 애니메이션 관제실이 된다. 성격 다른 조연들이 한 무대에 올라와 서로 대사를 주고받기 시작했는데, 감독이 큐 사인을 놓치면 순식간에 장면이 무너지는 구조다. 누가 누구에게 말을 걸었는지, 누가 대기 중인지, 어느 터미널이 죽었는지, 지금 전체 방이 어떤 상태인지 한 번에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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